ARTIST

SSF와 함께하는 아티스트 소개
jaime laredo
제이미 라레도(Jaime Laredo)

버몬트 심포니의 음악고문, 뉴욕 티슈 센터 실내악 예술감독,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의 심사위원장 등 미국 음악계의 중요한 포스트를 역임했다.

월간지 The New Yorker는 라레도에 대해서 “그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연주가 그 이상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지휘 등 다양한 방면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 라레도는 바로크에서 현대음악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아우르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센트루이스 심포니, 보스턴 교향악단, 시카고 교향악단, 뉴욕 필, 클리브랜드 교향악단, 필라델피아 교향악단, 런던 필,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크론 심포니, 퀘백 심포니, 세인트 폴 체임버, 인디애나 심포니, 버팔로 필하모닉 등 미국과 영국의 많은 오케스트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활약했다.

2002년부터 2년간 바로크 전문 연주단체 <브란덴부르크 앙상블>의 리더로 활동했다. 라레도는 이 앙상블을 맡으면서 키보드 전문 연주가인 피터 제르킨(Peter Serkin)을 독주자로 영입해서 바흐의 건반악기 협주곡 전곡을 녹음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라레도는 그간 수많은 거장들과 무대를 같이해 왔다.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Gould), 러시아 거장으로 첼리스트이자 지휘자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미국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Rudolf Serkin), 바이올린 음악계의 권력자 아이작 스턴(Isaac Stern) 등이 그와 무대를 같이했던 거장들이다.

지휘자로서 라레도는 스코틀랜드 실내악단, 볼티모어, 하트포드, 휴스턴, 몬트리올, 뉴저지, 오타와, 피닉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유타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특히 스코틀랜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두 번 미국전역을 투어했고, 카네기홀 연주는 티켓이 매진되어 당시 큰 화제가 됐었다. 세인트 룩스 오케스트라와 일본과 유럽 투어에 동행해서 지휘했고, 세인트 폴 체임버 오케스트라도실내악 시리즈에서 지휘했다.

5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8살 때 첫 독주회를 열었다. 11살 때 샌프란시스코 교향악단과 협연했는데, 샌프란시스코 이그제미너는 “1920년대에 유디 메뉴인이 있었고, 1930년대에 아이작 스턴이 있었는데, 어젯밤은 제이미 라레도가 있었다”고 격찬했다.

라레도는 커티스 음악대학에서 이반 갈라미언과 조셉 긴골드라는 두 명의 명교수 문하에서 배웠다. 또한 위대한 지휘자 조지 셀(George Szell)의 지도를 받을 수도 있었다. 좋은 스승을 만난 행운이 있었다.

1959년 5월, 당시 17살의 라레도는 브뤼셀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 콩쿠르 사상 최연소 우승자이기도 했다. 이 우승으로 그의 조국 볼리비아는 발칵 뒤집어졌고, 라레도는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 파즈(La Paz)에 있는 스타디움은 그의 이름을 딴 운동장이 되었고, 볼리비아 정부는 12장으로 세팅된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1976년, 라레도는 피아노 트리오를 결성했다. 멤버는 자신의 아내이자 첼리스트인 샤론 로빈슨 (Sharon Robinson), 피아니스트 조셉 칼리크슈타인(Joseph Kalichstein)이었다.

음반은 40여종에 달한다. 그 가운데는 그래미상, 도이치 음반상 등 권위 있는 음반상을 받은 음반들이 상당 수 있다. 글렌 굴드와 녹음한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루돌프 제르킨, 레슬리 파르나스와 녹음한 베토벤의 트리플 콘체르토가 유명하고, 3곡의 브람스 피아노 4중주곡(아이작 스턴, 엠마누엘 엑스, 요요마와 녹음)은 1991년에 그래미상 <최우수 실내악>에 선정됐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초량린과 녹음)와 브람스의 현악6중주곡(Isaac Stern, Cho-Liang Lin, Michael Tree, Yo-Yo Ma, Sharon Robinson과 녹음)도 명연주로 평가되는 음반이다.